[대담형식이지만 짜릿한 프랑스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아 노통브

살인자의 건강법 책소개

최근 설경구와 설현 주연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살인자의 기억법’ 영화의 원작인 김영하 작가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과는 다른 책입니다. (사실 제목부터 다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살인자의 건강법’입니다.) 프랑스 소설답게 잔인하게 우아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주인공은 베스트 셀러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타슈’입니다. 그 외 등장인물은 ‘남자’ 기자들입니다. 이들 둘은 대립되는 대담을 나눕니다. 인터뷰를 요청하여 찾아온 남자 기자들을 차례대로 ‘입담’으로 쫓아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찾아온 ‘여자’기자와의 인터뷰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몇 마디 건네보지도 못하고 그의 괴팍함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언어폭력과 궤변’에 혀를 내두르며 쫓겨나다시피 제 발로 걸어나왔으니 말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걸프만 전쟁이 막 발발하려던 시점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페미니스트라면 주인공들의 대부분의 발언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아래에는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단어나 ‘밑줄 긋게 만든 구절’ 그리고 새로운 용어들을 정리해놓았습니다. 책이 소설이니만큼 많은 내용이나 스포일러는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 감안하고 북리뷰를 보기 바랍니다.



살인자의 건강법 총평

살인자의 건강법은 성격이 괴팍한 어느 베스트 셀러 작가에게 인터뷰를 도전하며 벌어지는 대담형식의 소설입니다. 대담형식이라 책을 읽으며 떠올릴 수 있는 장소변화나 긴박감이 조성되며 가슴을 졸이는 감정을 느낄 수 없어 지루하다고 지레짐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릅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대담형식으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심지어 ‘영화’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그라블랭은 규칙적으로 안부전화를 했고, 타슈 선생은 한결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미안하이, 에르네스트. 나 아직 안 죽었네.’

Prejudice_책 초반. 에르네스트라는 하인과의 전화로만 자신의 ‘생사’를 알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전달합니다. 에르네스트 외에는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즐기고 있는 유명작가 타슈선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르네스트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선 이 작가선생이 특별한 인물인지는 딱히 못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터 미식가가 되셨습니까?

“절필했을 때부터, 그 전까지는 짬이 나질 않았다오.”

그런데 왜 절필하셨습니까?

“내 나이 쉰아홉이던 해의 어느 날, 이젠 끝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먼”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드셨는지요?

“모르겠소. 폐경기가 오는 것과 같았지. 그래서 미완성 소설을 한 편 남기게 되었소. 썩 잘된 일이오. 성공한 작가라면 미완성 소설 한 편쯤은 있어야 믿음이 가는 법이지. 그렇지 않으면 삼류 작가 취급을 받게 된다오.”

Prejudice_대문호들의 미완성작들은 의도적으로 남긴 것들일까요? 아마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작가만 그렇게 할 수 있을겁니다. 아래에서부터는 ‘여자’기자와의 대화가 시작합니다. 타슈선생의 말은 큰 따옴표 (“”)로 표시하였고, 여자기자의 말은 따옴표없이 재색으로 시작하고 끝맺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흥미진진해하는 동시에 또 수줍어했다면 그게 바로 얼치기 작가라는 증거요.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겠소?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직업이 바로 작가라는 직업이오. 문체니 줄거리니 수사법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작가 자신이니깐까. 그것도 말이라는 걸 갖고 그렇게 한단 말이지. 화가나 음악가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네 작가들처럼 말이라는 잔인한 도구를 갖고 그렇게 하진 않소. 암, 기자양반.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음란하지 않다면 회계사나 열차 운전수나 전화 교환수 노릇을 하는게 더 낫지. 다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들 아니오.”

“기발한 대답인데. 사실 사람들은 메타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오. 그런데도 이 단어는 아주 잘 팔려나가고 있지. 도도해 보이거든. ‘메타포’. 일자무식쟁이라도 이게 그리스어에서 온 단어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을 거요. 어원이 기똥차게 고상해 보이지. 허세야…… 순 허세라고. ‘메타’라는 접두사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포’의 원인 ‘페로’가 별 뜻도 없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쓰이는 동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메타포’란 두루두루 아무 뜻으로나 쓰일 수 있는 말이라고 결론짓게 될 거요. 통상적인 용법을 살펴보더라도 똑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테고.”


“아니오. 난 사람이 물러터지고 친절하기만 해서 말이오.”

친절하시다고요? 선생님께서요?

“끔찍할 정도지. 난 나처럼 친절한 사람은 본 적이 없소. 무시무시한 친절이라오. 타고난 성품이 상냥해서 친절한게 아니라 기운이 없어서, 성질 부리기 싫어서 친절한 거니까. 나는 툭하면 성질을 부리는 사람이거든. 한 번 성질이 나면 걷잡을 수가 없지. 그래서 성질이 날 일을 피하는 거요. 혹사병 피하듯이.”


겁에 질린 그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고래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바로 그런 냄새를 풍겼을 터였다.

“제대로 봤소. 나는 형이상학이 신진대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그러니까 신진대사가 동화작용과 이화작용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 착안해서, 형이상학을 동화학과 이화학으로 나눈 거요. 이 둘 사이에 이원론적 긴장 같은 건 없소. 사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리고 골치 아프게도 동시에 생격난 두 가지 측면일 뿐이니까. 사고라는게 진부 할 수 밖에 없거든.”


“여기저기 금이 갔잖소…… 그것말고도 기막히게 재미있는 놀이가 있는데, ‘고전 작품집에서 형편없는 부분 찢어내기 놀이”라는 거지.”

예?

“그렇소. 불순물을 제거한다오. <클레브 대공비> 같은 작품이 그 대상이지. 훌륭한 작품이지만 너무 길거든. 기자 양반은 아직 안 읽어봤을 테니 내가 짧게 다듬어놓은 판본으로 한번 읽어보시오. 걸작 중의 걸작. 문학의 정수니까.”

“바로 그거요. 내가 친절하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셨지? 그게 바로 그 증거요. 확증이라고.

Prejudice_주인공인 타슈선생은 끊임없이 궤변을 늘어놓고, 기자는 그것에 간단히 대답하고 질문하면서 타슈 선생이 이전과는 달리 술술 말을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냥 책을 읽어내려가면 이 여자기자 또한 남자기자들처럼 타슈 선생에게 밀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슈 선생과의 대화를 리드해 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여자기자는 타슈 선생의 모든 작품을 읽은 상태입니다. 이점부터 다른 이들과는 타슈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됐소, 됐다고! 뜻도 모르는 말 좀 그만 쓰시오. 문제는 순수한 선의란 말이오. 젊은 양반! 당신 생각으로는 어던 책들이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을 것 같소? 문제는 순수한 선의란 말이오. 젊은 양반! 당신 생각으로는 어떤 책들이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을 것 같소? 톰 아저씨네 오두막? 레미제라블? 물론 아니지. 그 책들은 말이오.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야심을 담고 있소. 암, 정말이지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는 책은 극히 드물다오. 그런 책들은 말이오. 고독과 비천함 속에서 탄생한다오. 작가는 잘 알고 있지. 그것들을 세상에 던져놓고 나면 더 외로워지고 더 비천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럴 수밖에. 사심 없는 친절의 본질은 알아보기 힘들다든가 알아볼 수 없다든가 보이지 않는다든가 예상할 수 없다든가 하는 것이거든….. 드러내놓고 베푸는 선행은 사심 없는 선행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제발 선생님의 선의를 보여주시는 셈 치고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사실대로 말씀 드릴까? 정말로 지적이고 총명한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소. 변변찮은 자들이 뭐든 설명해주길 바라지. 설명되지 않는 것까지도. 어차피 설명해봐야 멍청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영리한 사람들은 설명해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내가 뭐하러 설명 같은 걸 하겠소?”


그럼 형은 왜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죠? 나는 프레텍스타 타슈가 될 수 없었거든요. 좋았을까요? 뚱보에다 내시 같은 글쓰기광이 되는 거 말이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문학은 전쟁만큼 해롭지 않잖습니까.

“내 작품은 예외요. 내 작품은 전쟁보다 더 해롭다오.”

자화자찬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난 그래도 되오. 유일하게 나를 이해할 깜냥이 되는 독자니까. 암, 내 책들은 전쟁보다 해롭다오. 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니까. 반면에 전쟁이란 건 살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잖소.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자살해야 마땅하오.”

독자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건 왜 일가요?

“그건 말이오. 아까와는 달리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소.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지. 따지고 보면 내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유도 아마 거기있을 거요. 내가 이렇게 유명해진 건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오.”
… 하지만 내 책을 읽지 않았으니까 나를 편안한 사람, 호감 가는 사람, 성공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거요.”

정말 탁월한 논리로군요.

“반박의 여지가 없지. 자, 호머를 예로 들어보겠소. 역사상 이보다 유명한 인물이 없지. 하지만 실제로 ‘일리아드’원전과 ‘오디세이아’ 원전을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오? 몇몇 대머리 문헌학자들, 그 뿐이오……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호머의 글을 떠듬거리는 고등학생들을 진정한 독자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그 녀석들이 생각하는 건 (유행통신)이니 에이즈니 하는 것들뿐이잖소. 바로 그런 비범한 이유로 인해서 호머가 문학의 ‘전범’이 된 거요.”

상황이 그런데도 그걸 비범한 이유라고 생각하신다고요? 차라리 비통한 이유 아닌가요?

“비범한 이유라니까. 나 같은 작가에게 위안이 되는 이유잖소? 진정한 작가, 순수한 작가, 위대한 작가, 천재적인 작가는 자기 책을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오.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고독의 한 가운데에서 은밀히 탄생시킨 그 아름다운 것들이 천박한 시선에 의해 더렵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나면 말이오.”

적어도 노벨상 심사위원단은 선생님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소.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내 작품을 읽었다 해도 내 논리는 여전히 정당하오. 읽으면서도 읽지 않는 식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니까. 꼭 인간 개구리들처럼물 한 방울 안 튀기고 책의 강을 건너는 거지.”

예, 지난번 인터뷰 때 그런 말씀을 하셨죠.

실례지만 놀랍군요, 타슈 선생님. 경향문학의 신봉자처럼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선생님답지 않으신데요?


“레오 말레의 책을 읽고 나면 레인코트 차림의 처녀들을 전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오. 아, 정말 중요한 건 그거요! 시선 바꾸기. 바로 그거요, 우리가 말하는 걸작이란.”


“웬 지식인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구먼.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안 그러오?”



“페미니스트냐고? 내가? 난 남자들보다 여자들을 더 …
이유야 셀 수 없이 많지. 젖가슴이니 엉덩이니 기타 등등 같은 것들을 어떻게 달고 다닐 수가 있느냐고? 또 내가 여자들을 미워하는 건 희생자들을 미워하는 것과 가은 이치요. 희생자들이란 비열한 족속들이지. 그 족속들을 몰살하고 난 다음이라야 이 세상이 평화로워질 거요. 또 그래야 희생자들도 원하던 바를 이루게 될 거고. 즉 희생당하게 될 거고. 여자들을 별나게 사악한 희생자들이오. 그 누구보다도 그네들 자신에 의해,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에 의해 희생되기 때문이지.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싶거들랑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에 대해 관찰해보시오. 그 지독한 위선과 질투와 악의와 비열함에 몸서리를 치게 될 거요. 여자들 둘이서 건강하게 주먹질을 해대며 싸우거나 억세게 욕지거리를 퍼부어대는 걸 본 적은 없을 거요. 여자들의 주무기는 비겁함이오.”

Prejudice_책 전반부터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타슈선생의 ‘여성혐오 발언’은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논리로 무장한 그의 ‘여성혐오’는 기분나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반박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슈선생과 ‘대등하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은 ‘여자’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것일까요?



이 책에 등장한 다른 책들

파렴치한들 



단어의 의미

저어하다?
씨억씨억한?
웅숭깊은?
객쩍은?
빙충맞은?
‘연작이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신기한 용어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 연골암: 의사가 카이옌 (프랑스령 기니의 주되 일반법에 의해 유형에 처해진 죄수들을 가두어놓았던 1852-1945) 감옥 에서 발견한 병


레오 말레(Leo Malet 1909-1996): 프랑스 작가. 고아 출신. 몽마르트르의 샹송가수. 무정부주의자 및 초현실주의자와 교류. 문학 입문. 영미의 추리소설을 패러디한 소설을 주로 썼다.


셀린(Louis Ferdinand Celine (1894-1961): 프랑스 소설가. 어두운 밤의 세계를 속어와 은어가 난무하는 구어체 문장 속에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밤의 끝까지 여행을>이 대표작이다. 사뮤엘 베케트와 더불어 20세기의 비극을 가장 명석하게 그려낸 작가로 문학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극렬한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점이 그 명성에 오점이 되고 있다.)


요나: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달아나다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고 그 와중에 고래 뱃속에 들어가게 되어 사흘 밤낮을 그 속에서 지내다 겨우 살아났다.)


‘자리와 초형이상학(부조리극 <위뷔왕>시리즈로 유명한 프랑스의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1873~1907)의 조어로 예외적이고 부수적인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지님. 파타피지크


에그 밀크: 뜨거운 우유에 설탕을 넣고 달걀 노른자를 띄운 음료

토피: 캐러멜 타입의 영국산 사탕


트리포 포르토 플립: 포르투갈 산 레드 와인과 코냑을 2:1로 혼합한 뒤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첨가한 칵테일


알렉산드라: 코냑과 코코아 크림을 2:1로 혼합한 뒤 생크림을 가미한 칵테일


골 튀김이라든지, 콩팥 스튜라든지.


생트 뵈브를 반박함 - 19세기 프랑스 문인인 생트 뵈브는 실증주의 정신에 입각,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클레브 대공비: 프랑스 여류 문인 라파예트 백작 부인(1634-1693)의 장편소설. 연애감정과 남편에 대한 신의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귀부인의 심리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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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알찬 정보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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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남녀 평등을 외치고, 남녀 평등에 앞서가는 서양이라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다른 것이 문득 생각났다.


영어권 국가의 언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정확히 나누자면 Indo-European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영어, 스페인어 및 프랑스어 VS 중학교 교과서에 Altaic계통이라고 배웠지만 언어 뿌리에서는 '한국어'라고 따로 분류되어있는 한국어의 차이에 대해서)


language root,언어 뿌리,언어 계통



일단 영어부터

남성, 여성 단어가 있다. Actor, actress, hero, heroine 등이 그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대부분 남성 단어에 다른 접두사, 접미사가 붙어 여성으로 변화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여성이 더 짧은 단어도 있다. Bride, bridegroom이 그것이다.


영어로 쓰인 

Women / Men

She / He



Actor - Actress

Steward / Stewardess


Human, Human Being!

(Woman과 Human은 다른 종이란 말인가!!!)


무려 사람을 일컫는 말에 여자는 없다. 

'남자 man' 이라는 단어앞에 알파벳 두 글자가 붙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남자와 여자를 일컫는 말은 남자가 중심인 경우가 많다. 남자가 직업이나, 어떤 것을 일컫는 말의 중심이며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인 것이 여성을 일컫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부분만을 생각한다면, 인도-유럽 언어 뿌리가 남녀 성차별을 더 뿌리깊게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 여성을 부수적인 존재로 격하하는 것이니.)


결혼에서만 여성을 일컫는 단어가 더 짧다. 여성의 명사에 무언가를 덧붙이면 그제서야 "여자 -> 남자" 로의 변화가 일어나는 단어가 된다. (아마도 이것이 결혼식이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문화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그리고 여성의 직업을 언급할 때 우리는 ‘여류’라는 것을 덧붙인다. 그냥 작가이거나 그냥 조종사로 쓰지 않는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이뤄진다. 대중매체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특히나 신문기사에서 그런 것들을 우리는 많이 접할 수 있는데, 그냥 교사가 아니라 여교사라고 일컫으며, 여경 등등 남자의 직업 앞에 여성이라는 성별을 나타내는 접두사를 붙여, 직업에 여성이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여성가족부가 왜 이런 것에 반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진정 여성의 평등을 원한다면,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 이런 것부터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여성전용주차장’을 만들거나 ‘여성 화장실을 더 만들거나’하는 모두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을 떠나서 말이다.


그리고 한 때,

여성 전용 주차장은 무려 외신에 소개되면서 조롱을 받았다.






아, 접때 경찰 홍보 플랜카드에 범죄 및 강력 범죄에 대한 신고에는 건장한 이두근을 가진 남자 경찰관을 그리고, 상담이나 문의전화의 밑에는 아주 여리여리하고 이쁘장한 여자 경찰관을 둔 그런 사진이 논란이 되었다.



시민들에게 여자는 힘이 없고, 범죄자를 제압하기에는 조금 적합하지 않은 경찰관처럼 생각하도록 만든 그런 게시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왜 여성전용의 모든 사물과 공간에는 분홍색이 칠해져있는걸까? 왜 남성과 여성을 색상으로 나누는건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불평 불만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 공교롭게도 해당 사진에선 남자가 빨간색, 여자가 파란색 배경에 위치한다 ㅎㅎ 인터넷에서는 최근 경찰관인 여성들을 '치안조무사'라고 부르며 조롱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이 해당 직업을 갖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쓰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도 학습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사회화이며 어릴 적부터 기존에 존재하던 문화에 편입되도록 계속해서 교육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것을 떠나서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남녀차이를 없애야한다고 생각한다. Steward - Stewardess가 아니라 Flight Attendance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처럼.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더 좋은 것 같다.)


그 외 사족. Fireman - Fire Fighter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등

굳이 영어뿐만이 아니라 서양의 대부분 국가에서 여성, 남성 단어를 나눠놓고 있다. 가령, 사과는 여성 명사 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특히나 단어에 성별을 부여하는 것은 유럽에 위치한 국가들이 선호하는 언어방식인 것 같다. 다들 알고 있는 국가인 프랑스, 스페인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단어에 성별을 부여하는 국가들 대부분!)

이런 단어들에 성별을 부여함으로부터 나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콘셉트 주입이 시작된다고 본다. 우리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그 때부터!

(배운다기보다 혀가 어느정도 성장하기까지 주구장창 듣기만하는 그 기간동안) 과일이나 꽃은 여성명사로 대부분의 직업을 일컫는 단어는 남성명사로.


나는 이런 단어의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존여비’ 사상을 배워왔고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어의 성별을 떠나, 결혼한 여성의 ‘성’을 남성의 성으로 바꾸는 그런 관습이 서양에 더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다. (남녀 차별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조차 하지 않는 / 남녀차별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겪어온 서양까지 아직 그러한데?)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를 중시하는 한국이었기때문에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중국과 일본은 결혼한 남편의 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과거 고려시대엔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

* 여성의 재가가 가능했다. (이혼 후, 재혼 가능)

* 여성이 제사를 모시는 것이 가능. 따라서

* 남자 자식대신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아, 가문의 명맥을 있는 것이 가능

* '처가살이'가 빈번하던 시기 ('결혼한 여자는 내놓은 자식'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던 시기)


중국에서 넘어온 유교가 성리학으로 발전하고 조선시대에 우리들끼리 쿰척쿰척하며 발전시킨 '나름의 유교문화'가 심화되어 어쩌면 유교의 원산지인 중국보다 더한 지금의 '유교'사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게 된 것만큼은 잘 유지되어온 문화라는 생각.


사진: 남녀 임금 격차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들' 이란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그 의무를 함께 지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정수기 물통 갈기. 세부적으로는 산부인과에서 '여자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만을 받고 싶어하지만, 야간 당직을 서는 산부인과의사는 모두 남자~)


-군복무 의무제도

군복무에 대해서는 아주 오랫동안 남자-여자 대결구도를 구성하는데 논란이 되어왔던 주제라고 생각한다. 군삼녀를 비롯하여, 군복무 개념녀, 그리고 남자는 군대를 가지만 우리는 ‘임신’과 ‘생리’를 한다까지.


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군대를 갔다온 남성에게 군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자신들도 군대를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스트라 생각한다. 자신들도 군복무의 의무를 지고 난 후, 군복무를 이행한 자에 한해서 사회적 이점을 받도록 만들면 '군복무자 수혜 논란' 해결은 상당히 쉬워진다.

'군복무자 수혜 논란'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남자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체가 건장한 대한민국 성인, 그것도 '아버지가 한국인인 남성'들만 간다. (대한민국의 혈통주의) 모든 남자가 군복무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면, 남녀 성 대결구도를 만들 수 있지만, 모든 남자가 군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남녀 성대결구도가 이뤄지지 않는 논란인데, 계속 남녀 성대결구도로 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쩌면 군대를 가게 해달라'고 주장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여성들이 '군대'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감탄고토)


나는 어쩌면, 남성들이 교묘하게 여성들을 속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성들도 군복무를 ‘정상적’으로 이행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여성을 군대에 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그런 생각 (암묵적으로 남성 정치인들끼리 합의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야, 우리 절대로 여자도 '군복무 의무화'에 대한 제안은 하지 않기로 하자. 여자가 군대까지 가게 되면 우린 밥이야"라고 말이다.) 지능적으로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가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

장담컨대, 여성 권리 신장의 시작과 완성은 모두가 군대에 '징집'되거나 모두가 군대에 '징집되지 않고 모병제'를 시행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의 군복무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여성들이 입밖으로 꺼내는 것이야 고작. '여자는 임신을 하잖아.' 이다. 또는, '여자도 군대를 간다.' 인데.

여자는 임신을 하잖아. 는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임신의 도구’ 혹은 ‘인구 재생산의 도구’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격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여왕개미와 에일리언 퀸 그리고 매트릭스



자기가 자신을 도구로 만드는 그런 비인륜적인 행위가 이보다 더 할 수 있을까! 여성의 생의 목적이란 정말 Reproduction(사회적 재생산)이란 말인가? 


매트릭스에서 거대한 양수기계에 갇혀 끊임없이 전기를 재생산하는 그런 도구들처럼? 평생을 몇 만개의 알을 낳으며 왕국의 번영과 유지를 위해, ‘여왕’이라는 지위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왕국을 위해 존재하는 산란기같은 도구 말이다. 여러가지 역할 중에 그저 부여받은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것 중 하나인 여왕'인 것처럼 말이다. 평생 알을 낳고 그것을 길러내는데 인생의 목적이 있는 개체.




자신을 주체화하지 못하고 자신을 객체화하는 이런 말이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이 얼른 등장했으면 좋겠다. (여성들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란 어디에 있을까?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출발점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Universal Suffrage이다. 대다수 서양 국가에서 여성들의 참정권 즉,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들의 시위를 통하여, 국가에 대한 요구를 ‘시위’라는 형태로 얻어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 가져야 하는 권리인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변혁은 항상 어떤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당연시되던 혹은 뿌리깊게 박혀있는 어떤 신념이나 믿음들이 제도에 의해 한 순간에 뒤바뀌려면 그런 고통들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당시 대통령이던 린든 존슨 또한 마지막에 마음을 바꾸어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 등지에서 여성에게까지 참정권을 확대하는 시기는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과 겹친다. (물론 국가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지도 못했던 그런 시절이었지만), (국민 투표도 주먹구구식으로 치뤄졌고, 뭐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여성들이 참정권을 요구할 만한 시기가 아니었다. 요구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대한민국 여성의 참정권은 (투표권이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을 일반 대중들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성들의 요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세계의 추세에 맞춰서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들은 왜 5만원 권에 신사임당을 올리기로 결정했던 것일까. 신사임당이 어떤 인물인가? 

우리가 가르침 받아온 '여성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21세기에 '현모양처'의 표본인 그런 인물을 화폐인물로 쓰다니. 대한민국의 여성인권 신장이라던가 여성 지위 향상은 역행하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 여성인권신장에 기여한 인물들은 많다. 그리고, 오히려 신사임당보다는 위와 같은 이유 덕분에 '유관순'이 더 적합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말 '페미니스트'라고 칭할 수 있는 그런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별거 아닌 것에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중요한 것에 분노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정한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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