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뒤이어 탑승한 술에 취한 할아버지를 발견하였다. (그때 당시엔 할아버지였지만 아마 지금 마주친다면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고 걸쭉한 목소리로 버스 기사분에게 '내가 버스비가 없는데, 오늘은 그냥 좀 태워주소.'라고 버스가 떠나가도록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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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 분께서도 완강하셨기 때문에, 그 실랑이는 흐르는 실제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동안 계속 되었고, 출발하지 않는 막차 버스에 짜증내는 다른 승객들과 양보하지 않는 버스 기사 분 그리고 천이백 원이 없고 막무가내인 할아버지를 위해,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동전과 천 원의 지폐를 요금 함에 넣으며,

"제가 낼게요, 이제 됐죠? 출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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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분의 "AC"와 함께 차는 출발하였고, 이기적인 행복감을 조금 느낀 나는 얼마 안 가 후회하게 되었다. 막무가내였던 할아버지께서 탑승 후에도 계속해서 언성을 높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중간중간 피쳐링하시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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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한 승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내려야 할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를 뒤로 하고 환승을 위해 하철이게로 향하던 중, 나를 뒤따라 하차한 막무가내의 할아버지께서 나를 불러세웠다. 


할아버지께서는 내 신상을 물으셨고, 거나하게 취한 것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집까지 모셔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댁의 위치를 여쭙자, '우리 모두의 집은 어머니 뱃속이지!'에 이어,

태어나신 곳 말고, 귀가하셔야 할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는 

'하늘을 이불삼아, 땅을 방바닥삼아 잠을 청하면 되지!'라고 답하셨다.

갑자기 할아버지께서는 점퍼의 안주머니를 뒤적거리셨고, 주민등록증을 보면 댁에다 모셔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할아버지께서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돈이 없어서 버스비를 내지 못한 것이 아니네, 학생. 자네의 천이백 원은 지금 만 원이 되었네. 몇 배가 되었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

 세 번을 거절한 끝에 (대!한!민!국!은 삼 세판) 그 만 원을 받았고,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이(This) 만원 한 장을 자네의 평생 마스코트로 삼았으면 좋겠네." 


학생이라는 내 직업을 밝히자, 할아버지는 내게 직장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아직 어리기때문에 많이 부족하며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였고,

내가 거절한 할아버지의 또 다른 제안은 자신과 한 잔을 더 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그 날 그 할아버지와 모텔에서 잘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어 하철 막차를 꼭 타야하며, 시험기간이라 집에 돌아가보아야 한다고 다시 정중히 거절하였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려 집으로 걸음을 향하는 것을 보고 하철역입구로 향하려고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고, 신호등의 불이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아버지의 걸음은 횡단보도 위를 걸어가는 열 몇 명 중 그 누구보다도 똑바로 걷는 것이어서 나를 흠칫 놀라게 했던 기억이 난다.



   

십 몇년이 지난 지금, 그 만원은 우리집 어딘가의 내 수첩이나 내가 아끼는 책 몇 페이지인가에 꽂혀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 만원을 보며 후회하기도 했고, 내가 그 때 그 천 이백원을 대신 냈던 이유는 무엇일까?

-  나는 버스가 빨리 출발하기를 바랐다. 하철이를 놓칠 수 있었으므로

- 나는 버스가 출발하지 않아 짜증내는 승객들이 더 이상 짜증내지 않기를 바랐다.

- 그 할아버지를 돕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레알 버스비를 갖고 있던 아니던)

-그 할아버지를 도움으로써 내 자신이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어느 책의 구절은 '누군가를 돕는 것은 가장 이기적인 행위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자신이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였던가 아니면 링컨의 친구처럼 공리주의자였던가.


(링컨 대통령이 백안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구덩이에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돼지를 보았지만 그냥 지나쳐갔다. 백악관에 막 도착하여, 그 돼지가 계속해서 떠올랐던 그는,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돼지 하나도 구하지 않는 내가 대통령이라는 신분으로 어떻게 수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다시 되돌아가 돼지를 구하였다.

백악관으로 돌아와 기도를 하며 순수한 사랑에 의해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한 자신에 대해 회개했다. 그 일화를 들은 링컨의 친구가 "그런 생각은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모두가 행복해졌기 때문이다."라고 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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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만원을 받고나서 한 가지 후회가 남았던 것은 "그 만원을 끝내 받지말껄" 하는 것이었다. 그 만원을 받음으로써 나는 다음의 어떤 선행이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이기적인 베풂'이던 '순수한 베풂'이던지를 떠나서 선행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앞으로 어떤 의도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가?

최근의 나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아닌 그냥 '이기주의자'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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